성경은 시작하면서(In the beginning)로 시작하여 아멘(Amen)으로 끝납니다. 성경을 관통하는 첫창조와 새창조, 옛사람과 새사람, 현세상과 오는세상의 양면성은 장차 오실 주님 곧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신 전능자의 양면성이며, 또한 죽음과 생명의 경계인 십자가의 양면성입니다.
창 3:15은 절망에 빠진 첫 사람에게 선포된 최초의 복음이었습니다.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뱀은 그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은 정확히 십자가상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죄인에게 선포된 왕국복음(the gospel of the kingdom)이었습니다.
대홍수 이후 갈대아 땅에서 부르심을 받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선포된 복음은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는 왕국복음이었습니다(갈 3:8,9).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의 범법으로 인하여 모세의 율법이 더하여졌습니다(갈 3:19). 율법은 복음이 아니었고, 오히려 죄인을 정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훈육선생이었습니다(갈 3:24).
마침내 여자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친히 회개와 왕국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회개의 요구는 반역의 세상에서 왕께로 전향하는 것을 의미했고, 하늘의 왕국의 선포는 지상왕국주의를 포기하고 하늘의 통치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하나님의 왕국의 선포는 인본주의 왕국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신정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사도들에 의해 선포된 왕국복음은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 은혜의 복음, 화평의 복음, 영광스런 복음, 구원의 복음 등으로 설명되었습니다. 그것은 왕국의 성취가 도래하여 십자가의 진리가 모든 사람 곧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선포되어야 하며, 복음이 전 인류에게 골고루 분배되어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사에 의해 선포된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각을 알리는 '영존하는 복음'(the everlasting gospel)이었습니다. 곧 큰 바빌론의 심판과 함께 그리스도의 수확(추수) 심판을 선포하고, 마침내 세상 왕국들이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실 것을 선포하는 복음입니다.
성경을 관통하는 큰 맥은 회개와 왕국복음입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들은 이 큰 맥에 따라서 전개되고 해석됩니다. 왕국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효력을 통하여 회개하고 믿은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지고, 첫창조에서 새창조로 옮겨지며, 반역한 현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왕국복음의 중심부에 산상수훈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십자가의 진리를 바탕으로 왕국시민의 구체적인 생활방식을 제시하는 왕국복음의 노른자위에 해당됩니다. 과연 그러한지 함께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입니다.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먼저 앞의 문맥에서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 지방을 돌아다니시면서 왕국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셨다고 말씀합니다(마 4:23). 그러자 그분의 명성이 널리 퍼져 이방인들과 유다인들로 구성된 큰 무리가 그분을 따랐습니다(24,25절). 그분께서는 그 큰 무리를 보시고 갈릴리 지방의 어느 산 위에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셨습니다(마 5-7장). 그리고나서 뒤의 문맥인 8장 1-3절에서 주님께서는 산에서 내려 오셔서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마 4:23에서 보여주듯이, 예수님의 왕국선포와 병 치유사역은 줄곧 병행하며 하나의 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치유사역은 왕국복음의 가시적 증거로 제시되었습니다. 같은 맥을 따라서 마 5-7장의 산상수훈은 왕국복음의 구체적 선포였고, 마 8장은 치유사역으로 이어집니다. 이같은 왕국복음 선포와 치유사역의 구도는 마 26:2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으로 마무리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사실상 왕국복음의 선포와 치유사역, 그리고 십자가 사건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전후문맥뿐 아니라, 산상수훈의 내용 자체도 왕국복음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내용은 하늘의 왕국에 대한 선포로 시작되어(마 5:3), 하늘의 왕국의 선포로 일관되다가(5:10,19,20), 하늘의 왕국의 선포로 마무리됩니다(7:21). 특히 왕국백성의 일상생활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면 모든 필요가 더해진다는 약속의 말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6:33). 왕국복음은 사실상 하늘에 속한 신정통치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산상수훈의 전체 구성을 살펴보면, 5:3-16은 왕국시민의 증거; 5:17-48은 구약과 신약의 비교; 6:1-34은 종교적 위선자들과 하나님의 자녀의 비교; 7:1-23은 심판과 분별의 문제; 그리고 7:24-29은 결론으로써 말씀을 실행하는 지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마 5:3-16
하늘의 왕국을 소유한 왕국시민의 삶의 증거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는 삶의 증거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현 세상의 온갖 기득권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사람들은 가난할지라도 오는 왕국을 소유하고 있고, 애통할지라도 영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교만한 옛사람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으로 옷입을 것이며, 현세상의 물질적 만족보다는 오는 세상의 영적 만족을 갈급해할 것이며, 종교적 증오심대신에 형제를 향한 긍휼을, 종교 기득권에 대한 욕심대신에 깨끗한 양심을, 세력다툼과 파벌싸움대신에 화평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증거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은 성경대로 바르게 살면서도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 욕을 먹기도 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화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반가워하며 모든 일에 감사할 것입니다. 왕국시민의 선한 행위의 열매는 그 자체가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며, 그 빛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2. 마 5:17-48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율법과 대언자를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성취하러 왔다고 선언하십니다. 율법과 대언자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구약은 오는 왕국에 대한 그림자와 예표이지만 신약은 실체와 성취입니다. 구약은 육체에 관계된 법이지만, 신약은 마음과 영의 법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범법으로 인해 더해진 법이지만, 신약의 그리스도의 법은 율법에서 자유케하는 완전한 법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는 법으로서 율법을 성취시키는 사랑의 법입니다. 옛 시대(구약시대)의 살인에 대한 법, 간음에 대한 법, 맹세에 대한 법 등은 신약시대에는 근본적인 마음의 법, 영의 법, 사랑의 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마음 중심의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요 자유케 하는 완전한 법이라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구약과 대비한 신약의 사랑의 법 외에 율법보다 훨씬 엄격히 강화된 왕국법을 제시했다는 주장은 마치 주님을 엄한 분으로 알아 한 탈렌트를 숨겨둔 사악하고 게으른 종의 주장과도 같다 하겠습니다(마 25:24-30). 주님은 사랑과 충성을 요구하셨는데도, 사악한 종은 엄한 고등율법을 요구한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3. 마 6:1-34
율법은 겉사람의 행위를 요구하는 법이기 때문에 위선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에서 요구하는 행위는 겉사람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속사람의 믿음의 행위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생명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생명은 자녀다운 행위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지만, 율법을 붙잡는 종의 생명은 종교적 위선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제와 자선의 행위, 기도생활, 금식, 헌금, 그리고 의식주의 기본생활 문제 등에서 자녀의 생명과 종의 생명은 확연히 구별됩니다. 특히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 성취될 것을 위한 왕국시민의 기도로 특징지워지며, 왕국시민의 생활방식이 하나님의 왕국을 무엇보다 먼저 구하는 방식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 마 7:1-23
심판(judgement)의 문제는 형제에 대한 경우입니다. 즉 형제에 대해 함부로 심판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계합니다. 그것은 알곡과 독보리의 심판을 주님의 수확(추수)심판때까지 보류하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형제와 형제 아닌 자들에 대한 분별과 구별은 필요합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이방인들)에게 던지지 말라고 말씀했고, 자녀로서의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말씀했으며, 좁은 문의 노선에 대한 선택 여부로써 생명에 이를 자들과 멸망에 이를 자들을 구별할 수 있다 했고, 거짓 대언자들은 그 열매들을 보고서 분별할 수 있다 했습니다. 특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대언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며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인지 아니면 성경과 다르게 행하는 불법의 일꾼들인지를 잘 분별해야만 합니다.
5. 마 7:24-29
산상수훈은 결국 두 종류의 성경신자를 예시함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든 어리석은 자든 둘 다 말씀을 듣는 자들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요 성경신자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 25장의 지혜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도 같은 맥락으로서, 둘 다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자녀로 인하여 의롭게 된다 했습니다(마 11:19). 다시 말해서, 자녀의 생명은 생활의 열매로써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말씀이 자기 삶의 반석이 되어 환난이 닥쳐도 집이 무너지지 않지만, 이러석은 건축자는 말씀이 모래알같이 되어 자기 삶의 집을 환난으로부터 지탱해줄 수 없습니다. 마 25장의 지혜로운 처녀도 신랑이 오실 때까지 어두움을 지켜줄 기름을 예비하였지만, 어리석은 처녀는 어두움의 환난을 대비하지 못하여 재림 시까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산상수훈과 열처녀의 비유 둘다 행위의 열매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소위 행위복음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받았다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인지를 식별하는 기준을 제시한 것입니다. 즉 구원받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 참과 거짓, 알곡과 독보리의 식별방법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한 식별이 중요한 것은 주님의 수확(추수) 심판 때까지는 스스로 점검하고 입증하여 자신이 버림받은 자가 아님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3:5).
산상수훈은 왕국복음이요 십자가의 진리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산상수훈의 대상은 유다인들만이 아니고, 처음부터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마 4:25). 산상수훈이 선포된 장소도 다름아닌 이방인의 갈릴리 지방의 어느 산 위였습니다(마 4:23-5:2). 산상수훈이 처음부터 이방인을 겨냥한 왕국복음이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갈릴리에서의 산상수훈 이후에 주님께서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유다인 회당에서 왕국복음을 선포하셨기 때문에, 왕국복음의 순서가 첫째 이방인, 그 다음이 유다인이 되었습니다(눅 4:14-23). 세대주의 왕국연기설은 유다인이 왕을 거절했기 때문에 왕국이 연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이방인 위주로 왕국복음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시기하고 반발하여 거부했던 것입니다(눅 4:23-30).
왕국복음은 처음부터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위한 복음이었습니다(마 24:14; 막 13:10; 16:15; 롬 1:16; 갈 2:7; 3:8; 엡 3:5-7; 골 1:23; 딤후 1:9,10; 히 4:2,3,6). 비록 구원이 유다인에게서 나왔을지라도, 왕국복음은 애초부터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인 요 3:16도 하나님께서 세상(세계 인류)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유일하게 난 아들을 주셨다고 말씀하듯이 말입니다.
왕국복음은 은혜의 복음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결코 구원의 길이 아니며, 단지 죄를 정죄하여 죄가 심히 죄 되게 하려는 법에 불과합니다(롬 7:12,13). 모세의 율법이 대환난기에 구원의 길이 된다는 주장은 말도 되지 않는 황당한 미혹입니다. 죄에서 구원받는 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외에는 아예 없습니다.
산상수훈은 왕국헌법이 아니라 왕국복음입니다!
산상수훈이 천년왕국의 헌법이요 모세의 율법보다 훨씬 강화된 고등율법이라는 주장은 십자가의 은혜를 대적하는 사악한 교리의 뜸씨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온 세상을 통치할 천년왕국의 헌법이라면, 적어도 헌법전문이나 구체적인 법조항이나 상세한 시행규칙이 명시된 방대한 분량의 성문법 체계가 제시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산상수훈은 이미 살펴 보았듯이, 그런 성격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히려 왕국시민인 하나님의 자녀들의 새로운 생활방식과 열매를 통한 분별을 가르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왕국에서는 따로 헌법같은 것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곧 법이시기 때문에, 왕의 법(the royal law)인 사랑의 법(약 2:8)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 야고보서의 자유케 하는 완전한 법도 그리스도의 법인 사랑의 법이요 신약성경의 법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는 더 이상 죄가 존재치 않으므로, 죄를 정죄하는 율법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왕국 백성들과 민족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육을 다스리기 위하여, 마치 짐승들을 막대기로 다스리듯이 쇠막대기로 민족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계 2:27).
산상수훈은 천년왕국 시대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은혜시대와 환난기에 대한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배경이라는 단서들로 가득합니다: 등잔불, 부셸통, 바리새인, 공의회(산헤드린), 재판관, 코드란트 화폐단위, 세리, 핍박상황, 도둑들의 존재, 아궁이 문화, 거짓 대언자들의 존재,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마귀가 존재한다는 것!), 홍수의 존재...등등등. 산상수훈이 왕국복음의 선포이기 때문에 왕이신 주님의 초림부터 재림시까지를 적용기간으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주님의 공생애 사역이 오순절 이후 교회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듯이, 산상수훈 역시 교회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은혜시대는 주님의 초림으로부터 시작되어 교회시대를 거쳐 환난기의 수확(추수)심판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마 5:22의 공의회의 위험은 유다교라는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공의회는 유다교의 산헤드린이라는 종교회의(council)를 말합니다. 물론 천년왕국에는 더 이상 유다교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공의회도 존재할 리 만무합니다. 유다인들이 자기 형제에게 '라카'(골빈 놈)라 말하면 공의회의 위험에 놓이게 되고, 주님의 제자들이 자기 형제에게, 어리석은 자, 라 하면 지옥불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말씀은 형제의 식별기준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즉 진정한 형제애를 가지고 있다면, 자기 형제에 대해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없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살인죄라는 행위를 다루지만, 신약의 사랑의 법은 형제애의 부재에서 나온 생명의 반응을 다룹니다. 유다인의 형제애는 공의회에서 다루지만, 신약교회의 형제애는 지옥불이 다룹니다. 진정한 형제가 아니라면 지옥불에 갈 수밖에 없겠기 때문입니다. 고전 15:35의, 어리석은 자여, 는 형제에 대한 것이 아니므로 마 5:22과는 다른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부활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그렇게 부른 것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의미하셨는지를 주의깊게 살피지 않고, 문자적 해석으로 단정해 버리는 맹목적 경솔함은 신실한 성경신자의 태도라 볼 수 없습니다.
마 5:29의 실족케 하는 손을 잘라내고 눈을 뽑으라는 말씀은 비단 산상수훈이 아니더라도 마 18:6-9에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천년왕국에서 적용될 내용이 아닌 것입니다. 실족케 하는 일로 세상에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마 18:7) 현 세상에 해당되는 말씀임을 보여 줍니다. 이 말씀 역시 주님께서 무엇을 의미하시는지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문자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것은 주님을 엄한 분으로 착각한 한 탈란트 받은 종 만큼이나 신실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주님은 구약의 율법이 간음죄라는 행위의 죄를 다스리는 반면, 신약의 그리스도의 법은 근원적인 마음의 죄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대비시키시면서, 죄와 실족케 하는 일에 관한한, 가장 작은 자라도 업신여기지 말며, 아무리 소중하고 요긴한 것이라도 죄의 원인이 된다면 아낌없이 버려야 함을 말씀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실제로 눈을 뽑아내고 손을 잘라내면 과연 죄문제가 해결되고 지옥에 가지 않게 될까요? 오른쪽 눈, 오른 손이 없으면, 왼쪽 눈, 왼손으로도 음욕을 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절단하다 보면, 우리 몸 중에 남아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마음의 음욕이 문제라고 말씀하시고서도, 그런 극단적인 금욕주의 방법을 요구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금욕주의는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로서,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런 금욕주의에 대해 죽었다고 말씀합니다(골 2:20).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전후문맥에 따라 주의깊게 살펴서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는 신실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왕국복음은 구시대의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시키는 신약시대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율법은 범죄로 인해 더해진 정죄의 법인데도, 천년왕국에서 율법보다 엄한 고등율법이 적용된다는 가르침은 분명히 복음을 변질시키는 무서운 뜸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율법의 부활은 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만일 주님의 재림 이후에 또 다시 죄가 부활된다면, 주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욕을 보이겠다는 것입니까? 은혜의 영을 욕되게 한 자가 당연히 얼마나 더 혹독한 형벌을 받겠는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히 10:29).
산상수훈을 듣고 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와 평강!
http://antioch.co.kr
최근 댓글(홈페이지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