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함께 읽는 성서 (2) : 야고보서 1장 2-8절
온갖 시험에 빠질 때에
저자 야고보는 자신을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그가 과연 누구인지는 아직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야고보서는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흩어져 사는 자'란, 팔레스타인을 떠나 그레코-로마 사회 전역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 신자들을 일컫는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자, 많은 유대인들은 지중해의 각국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든 고국 땅을 떠나 이국에서 몸 붙여 살아야 했던 디아스포라가 겪었을 온갖 서러움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파괴된 성전 대신 각처에 회당을 세우고 그곳에서 토라 공부, 예배, 기도, 각종 예식 등을 행하며 신앙으로 극심한 시련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일 게다. 야고보는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맨 먼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한다. 사람이 살면서 온갖 시련을 겪는 것이야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크고 작은 시련에 부딪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시험에 빠질 때에 그저 의당 있는 일이거니 생각하라'고 교훈하지 않는다. 시험을 겪게 되거든 그 모든 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무슨 역설적인 교훈을 주려는 것일까?
유대 여러 지혜 문헌도, 사람이 시험을 겪을 때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를 이미 가르친 바 있다. 특히 벤 시라(그의 실제 이름은 '예수'이다. 집 50:27을 참조하라)의 가르침은 야고보의 교훈과 상당히 유사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네 처지가 불쌍하게 되더라도 참고 견디어라. 실로 황금은 불 속에서 단련되고 사람은 굴욕의 화덕에서 단련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한다." (집 2:4-5)
벤 시라는 시련(고난)의 교육적 기능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욥과 논쟁을 벌인 엘리후의 주장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욥 36:8 이하) 또한 잠언서도 주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꾸짖는다면서, 그러한 훈계와 책망을 싫어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잠 3:11-12)
그러나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고난을 잘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이를 것이니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교훈이 야고보가 하고픈 말이었을까? 잘 살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야고보는 온갖 시련을 겪을 때 그것을 '기쁘게(유쾌하게) 여기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인종(忍從)을 가르치는 인습적 지혜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고난을 기뻐하라는 가르침은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이미 가르치신 바 있다. (마
5:11-12) 야고보는 그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시련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위협한다. 하지만 모진 시련을
겪을 때에 믿음은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도 한다. 따라서 시련 자체보다는 그것에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야고보가 형제자매들에게 시험(시련)이 낳는 인내력을 추진력 삼아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교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야고보는 갑작스레 '지혜'라는 주제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겪는 온갖 시련과 지혜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시험과 지혜의 연관성은 지혜 문헌의 고유한 특징이다. 벤 시라의 말을 들어 보자.
"지혜는 처음에 그를 험난한 길로 인도한다. …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지혜는 마침내 그를 평탄한 길로 인도하여 기쁨을 주고 자신의 오묘함을 밝혀 주리라." (집 4:17-18)
그러나 야고보가 구하라는 지혜는 단지 시련과 지혜의 관련성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논리가 더 자연스럽다. 솔로몬의 지혜서는 "과연 인간의 아들 중에 완전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만일 그에게 당신께로부터 오는 지혜가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아무리 사람이 완전함을 이룬다고 해도 지혜가 없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생각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유대 지혜 문헌은 지혜가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잠 2:6) 욥기 '지혜의 찬미'(욥 28)에 잘 그려지듯,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금이나 진주보다 더 값진
지혜를 얻고자 갈망해 왔다. 그런데 이스라엘 현자들은, 지혜가 사람이나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욥 28:28)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는 야고보의 권고는 오랜 유대의 지혜 전승에 매우 충실한 발언이다. 야고보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자녀들의 필요에 너그럽게
기꺼이 응답하여 후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믿고 구해야
야고보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되 확신을 가지고 하라고 권고한다. 그는 특히 형제자매들이 기도드릴 때 가져야 할 믿음의 확신을 강조한다. (5:15-6)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막 11:24)고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필요를 아뢰고 구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서 무언가 필요를 구한다고 해서 나무라실 분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무턱대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믿음과 확신을 추가하라고 주문한다.
그것이야말로 기도자가 취해야 할 본연의 자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의심하는 사람을 '출렁이는 바다 물결 같다'고 하였다.
의심하다가 물속에 빠져든 베드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하나님께 구하면서도 의심을 하거나, 아예 기도조차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두 마음'을 품고 있거나 신앙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당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래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 본문 중에 언급된 집 50:27은 구약 외경인 벤 시라의 집회서 50장 27절을
가리킨다. 야고보서와 집회서를 비교하면 유사한 내용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야고보서의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집회서>를 읽어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가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서>나
<200주년 기념 성서>에 수록되어 있다.
정병진 / 여수 솔샘교회 목사
원문 링크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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